회사가 집이냐? 형, 동생이 어딨어?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의 속뜻은 서로를 아끼고 챙겨주며, 직원들을 단순이 회사의 일 부분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로 대우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네,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뜻으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과연 적합한 말인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간혹 회사 동료끼리 형, 동생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봅니다. 업무적으로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했다거나 성격이 비슷하거나 동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잘 뭉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직책이나 직급을 뛰어넘은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럴 경우 더 이상 선임, 책임은 사라지고 형님, 아우만 남게 됩니다.
학연카르텔이 회사를 망치는 주범
저희 회사는 대기업입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아주는 그런 회사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말 글로벌 회사인지 의아하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경영진은 모두 S대 출신입니다. 한술 더 떠서 특정 사업부에 경영진 대부분은 모두 같은 과 출신입니다. 사실상 대학생활의 연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조직경영자가 자기 자신만의 온전한 색깔로 사업 운영이 가능할지 궁금해집니다. 그냥 저희가 액면으로 보기에도 본인의 생각보다는 선배와 연공서열에 의한 권력의 결정에 좌우되는 게 그대로 보이는데도 말이죠. 이런 구태의연한 인사체계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게 참 미스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자기들끼리 연대는 또 돈독합니다. 문제는 그 돈독한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어떤 사업 부장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자연스레 묻어갑니다. '신상필벌'이라는 허울 좋은 시스템은 있지만 실제 거기에 걸맞은 '필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회사에 들어온 이후 자기 소속, 자기 학과, 자기 학교, 지연 학연에 연연한 시스템에서 존재하기만 하면 20여 년의 근속은 따놓은 당상이니 말입니다
회사 망해도 형, 동생 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매년 실시하는 조직 건전성 평가는 좋은 지표만 나오길 기대합니다. 설사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내용이 나타나면 개선을 위한 노력이랍시며 엉뚱한 워크숍으로 뺑뺑이 돌리기 일쑤입니다. 조직 내 사원들 대부분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대로 된 답변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평가에서는 '예상 답안'만 있을 뿐입니다. 누구도 그 답안에서 벗어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 조직이 지금 이대로 유지되는 이유의 한 가지는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된 의료대란이지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서민들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시스템은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누군가는 그들만큼 학벌을 쌓지 못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해 의식을 떠나서 그 사람들이 회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가장 언짢은 부분은 그런 시스템을 알면서도 나 역시 그런 시스템에 기생하여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이렇게 글이라도 남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 말입니다.